나이 들어 줄어들기는 했지만, 아내와 가끔 다툰다(고 쓰고 혼난다고 읽는다). 일이 벌어지면 대부분 달린 입이 있을 뿐 나올 말은 별로 없다. 벌써 은혼(銀婚), 살림을 함께한 지 스물다섯 해째다. 아내가 화를 낼 정도라면 시비가 아주 분명한 상태다. 내가 잘못했거나 잘못하는 중이거나 잘못할 것이다.
억울할 때도 드물게 있다. 아내를 위하려는 본래 마음과 달리 입이 헛발질했거나 행동이 딴말하는 경우다. 가령 오랜만에 함께 이야기나 나누려고 말을 꺼냈는데 아내가 피하고 싶은 화제를 무심코 건드렸다든지, 길거리 음식이 맛있어 보여서 같이 나누어 먹으려고 사 갔는데 며칠 전부터 아내가 다이어트 중이었다는 사실을 깜빡 잊었다든지 하는 것 같은. 물론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삶의 법칙이고 결과가 의도를 배반하는 것이 인생의 규칙이다. 이보다 훨씬 심했던, 떠올리고 싶지 않은 비극들도 수두룩하다.
그런데 부부 싸움이 부부 투쟁으로 이어지는 일은 이런 경우에 주로 생긴다. 아내랑 말을 다투는 중에 은근한 부아가 치민다. 억울한 기분이 머리에 들면서 미안한 생각을 서서히 밀어낸다. 점차 내 뜻을 짐작하지 못하는 것이 야속하다. 좋은 일 하려다 뺨 맞는 신세가 처량하다. 내 마음을 몰라주느냐면서 답답한 마음이 결국에는 거꾸로 화를 낸다. 한순간으로 끝날 다툼이 사흘간의 불편한 냉전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돌이켜보면 부부나 연인 사이 다툼에서 가장 한심한 변명이 의도를 내세우는 일이다. 내 말이나 행동의 진심을 알아줘야지, 그 표현이나 결과만 보고 네가 기분 나빠 하면 안 된다. 좋은 뜻으로 나쁜 결과를 낸 내 잘못도 약간 있지만, 내 좋은 뜻을 읽지 못하는 네가 훨씬 잘못했다. 그러니 내가 너한테 화를 내는 적반하장을 넌 이해해야 한다. 잘해야 이런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커다란 맹점이 있다. 부부나 연인 간에는 본래부터 나쁜 의도란 있을 수 없다. 무조건 선한 뜻으로 좋은 결과를 빚고자 서로를 대하니까 부부나 연인이지, 애초부터 나쁜 맘을 품는 것은 적이나 원수 사이에나 해당하는 일이다. 만약 사랑하는 사이에 벌어진 어떤 잘못이 의도마저 나쁜 것이었다면 그건 곧 헤어지자는 뜻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상대방 화가 풀릴 때까지 순순히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내 뜻을 몰라주는 네 잘못이 더욱 크다고 역공을 가하는 것은 연인이나 부부의 도리일 수 없다. 방귀 뀐 사람은 결코 성을 내면 안 된다. 상대가 내 뜻을 알아줄 때까지 참는 게 우선이다.
사실 인간관계가 다 똑같다. 누군가는 (인간 만들겠다는) 좋은 마음으로 폭력을 휘두르고 누군가는 그 사랑을 생각해서 참아야 할 때 거기에 권력이 작동한다. 누군가는 (일 열심히 하라는) 좋은 의도로 함부로 막말을 쏟아붓고 누군가는 기분 나빠도 그 뜻을 생각해 참아야 할 때 거기에 권력이 작동한다. 누군가는 (나라 잘되라는) 좋은 뜻으로 정책적 실수를 연달아서 저지르고 시민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할 때 거기에 권력이 작동한다. 우리는 흔히 이러한 관계를 갑을 관계라 부른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강자의 악의는 곧 불법이거나 위법이다. 적어도 거기에 아주 가까운 야만적 행위일 가망이 높다. 이 때문에 강자는 행위의 의도가 아니라 행위의 결과로만 평가받아야 한다. 그러나 실제 현실에서 실수나 잘못을 저지른 후 강자들은 흔히 의도를 내세우는 것으로 책임을 면하려 한다. 강자들이 책임을 피하고자 스스로 이 말을 입에 올리거나 이 말이 사법적 면죄부로 남용될 때 사회 전체의 정의와 공정이 무너진다. 어차피 약자들은 항상 강자들 눈치를 보고 뜻을 살피면서 살아간다. 강자의 뜻엔 오해가 있기 어렵다. 의도는 상대가 알아주는 것이지 억지로 알아 달라고 할 수 없다. 이 말이 강자의 언어로 쉽게 쓰이지 않을 때, 아마도 우린 더 나은 사회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July 29, 2020 at 02:06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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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섬情談] 의도는 강자의 언어다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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